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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2 00:01

[공연]헬무트 릴링 바흐 공연 내 귀에 들리는 것


 지난 목요일이었으니 역시 지각 포스팅이긴 합니다. 어쨌든 목요일 대전예술의 전당에서 대전국제음악제의 일환으로 헬무트 릴링과 바흐 콜레기움 슈투트가르트, 게힝어 칸토라이 슈투트가르트의 내한공연을 보고왔습니다. 헬무트 릴링...76세의 이 노지휘자는 바흐음악에 헌실해온 일종의 스페셜리스트에요. 파트너로 온 단체들도 헬무트 릴링이 54년대에 직접 창립한 합창단인 게힝어 칸토라이와 그들의 기악파트너로 65년에 창립한 바흐 콜레기움이었습니다. 바흐 해석에 있어 헬무트 릴링이 보여줄 수 있는 온전한 모습이 펼쳐진 공연이었다는거죠. 지휘자부터가 바흐 음악으로는 전 세계에서 두세손가락에 꼽히는 거장이고 그와 50년동안 호흡을 맞춰온 연주단체이니까 바흐를 듣기에는 정말 귀중한 기회였죠 (물론 단원의 변화가 있었겠지만 클래식 마니아들은 아시다시피 높은 레벨의 연주팀들은 단원이 바뀌어도 그 팀의 색깔을 유지하죠.)

 1부는 헨델(G.F.Handel)의 작품이었어요. 팬들에 대한 배려와 시대에 대한 교감이라는 측면에서 구성한 프로그램이었겠죠. Dixit Dominus Domino meo (HWV.232) 주님께서 말씀하셨다입니다. 선입견때문일지 몰라도 헨델의 종교음악은 바흐보다 날렵하고 세련된 느낌이 듭니다. 굳이 나쁘게 이야기하면 약간 속물적이고 좋게 이야기하면 화려합니다. 시편109편을 가사로 한 이 일종의 종교칸타타는 그 내용이 최후의 심판에 대한 무시무시한 (혹은 기독교적인 측면에서는 최후의 승리)선포인만큼 합창에서는 찬란함과 유려함이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 저는 전적으로 바흐를 더 좋아하지만 바로크시기의 합창음악은 일정 레벨 이상의 작곡가 작품이라면 매혹당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요. 중간 중간 독주자들의 아리아보다 합창이 더 좋았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호불호가 작용을 했겠지만요. 

 두번째는 바흐(J.S.Bach)의 칸타타 (Cantata BWV.12 Weinen, Klagen, Sorgen, Zagen) 울며 탄식하고 걱정하며 두려워하도다 였습니다. 아무리 유능한 연주단체라도 어쩔 수 없듯 공연의 초반에서는 약간의 불안함이 있었지만 곧 없어지고 이곡 부터는 공연의 질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다성음악일수록 파트간에 엄정하게 맞춰지는 철저함을 좋아하는데 이들의 연주는 약간 자유롭더군요. 헬무트 릴링은 연세가 많으신 만큼 약간 구부정하고 강건해보이지 못한 모습이었는데 그의 여유로운 지휘의 손놀림이 더 그런 이미지를 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칸타타부터는 화려한 그들의 경력이 증명하듯 여유롭지만 허투로 흩어지지 않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어요. 특히 확실히 합창단의 소리의 질이 감동적이더군요. 높은 레벨의 실력에서야 들을 수있는 남자들의 톤도 고음악-종교음악에 어울리는 좋은 질감이었구요. 

 질러대듯 자신이 힘을 다하고있다는걸 과시하는듯한 소리는 확실히 합창에서 어울리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이 무조건 나쁘다는건 아니죠. 많은 재즈나 흑인음악, 락에서 증명되듯..) 테너나 소프라노에서 그것이 확연한데 힘이 느껴지면서도 넘치는 수고로움이 청중의 긴장으로 와닿는 그런 소리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실력있는 팀일 경우는 다르죠. 교회건 공연장이건 그 공간을 저 천장부터 가득 매우듯 울려퍼지면서 고르게 확 감싸안아주는 소리는 말 그대로 들어봐야 압니다. 아무리 좋은 오디오라도 흉내낼 수 없는 느낌이구요. 팔세토에 가까운 발성의 테너 고음도 딱 적절했고 날카로워지기 쉬운 단점을 꽉 잡아놓은 소프라노도 좋았고 암튼 전반적으로 확실히 좋았습니다. 

 인터미션 후 바흐의 모테트(Motet BWV.227 Jesu meine Freude)예수는 나의 기쁨이 연주되었습니다. 바흐는 칸타타가 꽤 많지만 모테트는 6곡밖에 없습니다. 음악적으로 굳이 모테트와 칸타타를 구별할려고 애쓸 필요는 없지만 모테트가 일단 합창 자체에 방점이 찍힌다는(기악파트나 칸타타에 많이 들어가는 중간의 솔로보다)정도만 생각해도 될거에요. (음악 이론적인 절대적 기준은 아닙니다.)
 이 곡은 1723년 장례식에서 연주되었다고 알려진 곡입니다. 지휘자는 이 곡에서는 지휘봉을 놓고 맨손으로 지휘하더군요. 압도적이었습니다! 원전연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질색할지도 모르겠지만 재해석이라는 지휘자의 중요한 의무에 충실했던 연주라는 긍정적인 느낌이 듭니다. 쓸데없는 과격함은 없었고 감정표현의 지나침도 없었지만 전광판의 가사를 훔쳐볼 필요도 없이 그냥 합창 소리 자체의 압박과 선율만으로도 지루함 없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연주였어요. 아무튼 우선적으로 바흐의 선율이 너무나도 아름다웠지만 연주 자체도 아주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바흐의 마니피캇(Magnificat BWV.243)이 연주되었어요. 보통 마리아찬가라고도 합니다. 미사의 전례음악은 아니지만 저녁(정교회는 아침)예배때 꼭 불려지는 노래죠. (이런 명칭은 특정 곡의 제목도 아니고 하나의 장르라고 하기도 조금 애매해요.) 합창단의 수가 조금 늘었고 한 명이던 트럼펫도 파트를 채우고 팀파니도 들어왔습니다. 그만큼 음악은 활기차졌고 솔로들도 더 과감하게 앞으로 나와 연주하는 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줄기차게 기악파트에서 주선율을 담당하던 오보에만의 소리에서 관악기가 울려퍼지는 소리로 바뀌면서 사뭇 다른 느낌을 주더군요. 연주가 끝나고 커튼콜 후 두 곡의 앵콜연주로 이번 공연은 막을 내렸습니다. 

 아 좋은 공연이었어요. 외국 연주단체가 무조건 좋은건 아니라지만 아무래도 최상위 레벨에서는 우리나라 연주단체가 진입 못한 영역도 있고...고음악의 합창은 그런 영역입니다. 우리나라에선 낭만주의 오페라의 주역으로 설 수 있는 솔리스트가 많이 양성되었고 질이 상당히 좋지만 전반적으로 고른 능력을 가진 수십명의 사람이 모이는 합창단, 그것도 발성부터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고음악 전문 합창단은 구성이 안된것도 사실입니다. 접하기 어려운 공연이었고 연주 자체도 매우 흡족했습니다. 

 솔리스트 중에 알토가 압도적이더군요. 옷부터도 다른 여성 솔리스트들은 합창단과 거의 같은 검은색 드레스였던 반면 어두운 자주빛이 도는, 그것도 과감하게 가슴이 확 파인 드레스부이어서 눈에 띄였습니다. 젋은 가수임에도 외양의 선입견에 비해 소리가 상당히 좋았습니다. 솔직히 우리 나란 심지어 성악에서도 높은 음역을 우선시하고 주목받는 자리만을 최고로 치는 악습이 남아있거든요. 좋은 알토나 메조가 나오질 않죠. 중역대가 꽉 찬 이런 여성 알토소리도 참 오랬만에 들어보는군요. 

 오랬만에 대전에서 좋은 공연 보고 나서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합창 위주로 시디들을 다시 꺼내서 들어볼까나요. 가을에 잘 어울리기도 하구요. 그럼 이만 총총

뱀다리 하나 : 제 뒷 줄의 끝쪽에서...2부가 시작되기 전 연주자들이 지휘자를 하나도 안본다고 저게 뭐냐고 떠들던 남자들이 있었는데...물론 그 정도로 주목해서 연주광경을 보았다는데 점수를 드리고 싶지만 베토벤 바이러스 정도의 드라마만 보셨거나 상식을 좀 쌓으셨다면 좋을텐데... 지휘자가 연주때만 모습을 보이는거라고 생각하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악보를 처음 읽고 해석하고 앙상블을 맞추고 리허설 하는 동안 지휘자가 모두 진두지휘하는겁니다. 그게 끝나고 무대에 설때쯤이면 중요한 몇 부분만 지휘자를 보아도 연주가 충분히 이뤄지죠. 더군다나 경험이 적어 실전에서 실수가 잦고 그걸 수정하기 위해 지휘자를 의존해야하는 수준의 연주단체라면 모를까 능숙한 프로들은 리허설로 지휘자와 모든것을 이미 맞춰놓았기때문에 공연때는 자신의 연주나 악보에 몰입해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베를린필처럼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고 객원지휘자로만 움직이는 특이한 연주팀의 경우는 어떤 지휘자가 와서 어떤식의 해석을 내놓아도 짧은 몇 번의 리허설로 해석을 재현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동시에 자신들의 연주 컬러에 지휘자가 어느정도 맞춰주기를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자만심도 있는 거지요. 

 뱀다리 둘 : 하프시코드 등을 쓰는 편법을 동원하지 않고 오르간으로 통주저음을 연주하더군요. 전자오르간인지 실제 에어를 쓰는 오르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겉으로 드러난 파이프는 없었어요. 합주때는 잘 구별되어 들리지 않다가도 문득 문득 연주를 감싸쥐는 소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뱀다리 셋 : 저는 B석의 맨 앞에서 보았고 제 앞의 통로 건너는 A석이었는데...바로 앞에 머리 요란한 젋은 것들이 와서 불 꺼지자 마자 한 쌍은 여자가 남자 어깨에 머리 얹히고 뭐 그러더니만 1부 끝나고 자리를 비우더군요. 10만원 가까운 돈을 내고 이 뭐...갑부인가? 아니면 초대권? 초대권이었을 가능성이 높죠? 여전히 초대권을 뿌리는 게다가 그게 A석이나 S석인 현실이 마뜩찮습니다. 그리고 제 뒷줄에 앉아서 공연 시작도 하기 전에 자리를 누가 예약했냐느니 뭐 어쩌구 신경질 부리다가 불 꺼지자 A석의 빈자리로 냉큼 가 않는 모습도 참 좀 그랬어요. 어차피 빈 자리니까 라고 하지만....적절한 예인지 모르겠지만 버스 탈때도 우등에 빈 좌석 있다고 일반 표 끊은 사람 태우진 않잖아요. 같은 우등이라면 일찍가실분~ 하면서 부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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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도르페 2009/11/05 03:47 # 삭제 답글

    아 이 글 보니깐 저도 공연 보러 가고 싶네요우.......
    하지만 전 가난한 학생...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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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얼거림

의미를 가지는 날들은 기억의 조작일뿐. 12월 31일이 그냥 모월 모일과 다른게 무었이 있는가. 다 맘먹기 나름.

지금 몇시인데 이러고있니?

트위터스러운 한 마디

레이의 포카포카가 귀를 맴돈다는건 솔직히 고백하기 싫었다. 다행히 나만 그런게 아닌가보다. 디브이디 나오면 사서 그 부분만 반복재생할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