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퍼텍 나다에서 하는 마지막 프로프즈에 다녀왔습니다. 매 년 하는 좋은 프로그램이죠. 개봉했던 영화들 중 뛰어난 영화들을 다시 상영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특히 올 해는 나다 10주년을 맞이해서 올 해 상영된 영화뿐 아니라 몇 몇 사람이 추천하는 좋은 영화들도 상영했습니다. 아 이 시리어스맨은 올 해 상영 영화입니다만...
코엔형제의 영화는 독특합니다. 말 그대로 매우 독특하죠. (조엘 코엔과 에단 코엔 중 감독에 조엘 한 명의 이름이 있어도 어차피 각본을 에단이 혹은 같이 등 등 작업하기 때문에 크래딧과 상관없이 코헨형제의 영화로 분류합니다.) 아리조나 유괴사건, 허드서커 대리인, 파고 등 내러티브가 확실한 작품도 있지만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나 위대한 레보스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처럼 스토리는 어느정도 있지만 소위 '결말'이 희박한 작품도 있습니다. 그리고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를 받은 바톤 핑크처럼 완전 어리둥절한 영화도 있죠.
하지만 어떤 영화든 기본적으론 독특합니다. 우디 알렌 등과는 다른 궤의 블랙 유머가 있고 잘 만들고 동시에 평범해 보이는 화면들에서도 자꾸 보다보면 뭔가 독특하게 어그러지고 평범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런데 관객들에게 제일 먼저 와닿는 것은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그래서 뭐 어쨌다는거지?'입니다. 그 어떤 거대하고 완벽한 결말을 기대하는 관객들은 불평을 하게됩니다. 유럽 예술 영화처럼 형이상학적인것도 아니고 가끔 키득거리면서 잘 봤는데 갑자기 이렇게 끝내버리면 어쩌자는거야? 좀 더 있는거 아냐? 크래딧이 왜 올라가지? 심지어 코멕 멕카시의 원작소설이 있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도 그렇습니다. (물론 원작을 개작한건 아니고 원작도 그렇습니다만 책은 어떤 '설명'하는 점이 좀 있긴 하죠.)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 덕분에 무시무시하고 흡입력있게 이야기를 진행하다가, 블록버스터 느와르라면 펑 하고 터질 결말이 수수하게 끝나버리고 늙고 지친 보안관(토미 리 존스의 그 주름진 얼굴)의 뜬금없는 중얼거림으로 막을 내리니까요.

시리어스 맨은 코엔형제의 다른 영화들보다 더 '내용'이 없습니다. 소위 '어쩌라구'의 대표적 영화죠. 그럼에도 이 영화는 매우 좋습니다. 거대 담론의 철학적 내용이 아니면서도 동시에 생각하게 만들고 생각하는 동시에 눈치볼것 없이 매우 자유롭게 해석하도록 여백을 둡니다. 그리고 또 보면서 계속 키득거리게 만들구요. 이런 만듦새가 쉽세 만들었거나 졸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주인공은 복잡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아내는 뜬금없이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고 이혼하자 합니다. 그가 교수로 있는 학교에서는 한 학생이 (한국인인!) 성적을 고쳐달라면서 뇌물을 주고 동시에 종신직 심사가 얼마 남지 않아서 이 사실이 발목을 잡을까 전전긍긍합니다. 뭔가 거창한것을 하는것 같지만 그렇지 못한 동생이 얹혀살고있고 자식들은 괜찮은거 같지만 그렇지도 않고 신경을 긁습니다. 이 모든 상황이 기가막히게 맞물리면서 주인공을 궁지에 몰아넣습니다. 내가 어떤 원인제공자가 아닌듯 한데 상황이 그렇게 만드는 미궁을 겪어 보셨나요? 그 상황은 점점 꼬이고 슬금슬금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나는 벌써 수렁에 빠져있는?
그런데 영화는 그 과정을 너무 코믹하게 그립니다. 물론 주인공의 심약한듯 하면서도 전전긍긍하는 캐릭터의 연기에도 큰 몫이 있지만 시나리오가 아주 매끄럽거든요. 과장된 한 방이 아니라 이 슬금슬금 집어삼키는 과정을 즐길 수 있다면 이 영화는 아주 재미있습니다. 더군다나 코엔 특유의 의외의 유머도 곳곳에 숨어있구요.
또하나의 즐길꺼리는 (미국 사람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60년대(구체적인 시대명시는 없습니다만 교외의 중산층이라는 그 익숙한 배경이나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등으로 미루어 보건대) 미국 유대인 사회를 보는 면면입니다. 히브리어가 종종 나오고 유대인식의 성인식이나 토라 암송 등 다양한 스펙트럼이 펼쳐집니다. 우디 알렌이 베이글, 바케트, 하얀식빵 중 어느것을 사가는가로 파악하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냥 유대인 사회 자체가 흥미있게 펼쳐져요.
자 주인공은 이 골치아픈 상황에 도움을 받고자 랍비들을 찾아갑니다. 사실 큰 도움이 되진 않아요. 포인트는 이겁니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것. 심지어 주인공이 그토록 만나고 싶어하고 진짜 무언가 한 방 해줄것 같은, 거의 호그와트의 교장분위기인 랍비는 멍하니 있으면서 '생각하느라 바쁘다'고 만나주질 않고 성인식을 마친 주인공의 아들과 만나서는 대단한 철학적 탈무드 단어인것같이 몇 마디를 내뱉지만 그저 노래가사나 팝밴드의 구성원 이름뿐이죠.

이 영화에 대한 힌트는 존재합니다. 오프닝 시퀀스를 보면 톨스토이의 우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유대인 농부가 길에서 자신으르 도와준 랍비를 초대하는데 아내는 그 사람이 이미 죽었다고 합니다. 실제 랍비가 오자 아내는 몇마디 말을 걸고는 가슴을 얼음깨는 송곳으로 찔러버리죠. 랍니는 '지나고 난 다음에야 알게된다'는 말을 남기고는 비틀거리면서 떠납니다.
둘째 주인공은 물리학교수이며 물리학자답게 수학에 대해 신념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중에 나오는 그의 수업 내용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입니다. 이 논리실험의 결과는 양자는 이곳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오직 확률만 존재한다는 거입니다.
세째 주인공의 동생은 진짜 바보인지 서번트 증후군인지 모르겠지만 골치덩어리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어떤 글(이랄까..공식이랄까..)를 만듭니다. 아마도 어느정도 맞춰지는것 같구요. 하지만 본인의 미래를 컨트롤하지는 못합니다. 카드도박은 이길 수 있어도 자신은 계속 경찰에게 체포되죠.
그리고 제목입니다. 말 그대로 진지한 사람입니다.
결국 인간은 아무리 진지해보려고 하고 원인과 결과를 끝까지 찾아내려해도 운명이나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불확실하게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초반부 자신은 물리학의 내용을 이해하지만 수학을 못할뿐이라는 한국인 유학생에게 주인공은 힘주어 말하죠. 원인과 결과, 인과론에 대해. 주인공은 그런 시리어스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가 소용돌이 속에서 하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말려들기만하죠. 소용돌이 자체도 코믹하지만 주인공도 코믹합니다. 이 자체가 지독하게 짓궂은 블랙유머로 펼쳐져요.
그러니 답이 없고 엉뚱해보이는 결말도 수긍이 갑니다. 아니 멋진 결말이죠. 주인공의 모든 문제가 과연 해결된 것일까요? 불안함은 계속 남습니다. 주인공 아들이 괴로운 이유는 친구에게 줄 돈을 주지 못해서였죠. 마지막에 그디어 돈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왔을때 모든것이 해결되었을까요? 아니 그 앞에 거대한 허리케인이 닥쳐왔는데요?
코엔은 대단히 심각한 삶의 철학따위를 허세있게 설파하는 감독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더 좋죠. 하지만 간단하면서 힘있는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영화로 드러내어 싸구려같은 작품을 만드는 수준도 아닙니다. 시리어스맨은 그 대표적 결과물이죠. 인간은...그냥 인간인겁니다.
더불어 리뷰를 쓰는 도중에 검색에서 찾은건데 주인공이 찾아가는 세 명의 랍비는 욥의 친구들과 맞물린다는군요. 욥은 구약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아! 딱 들어맞는군요. 구약성경에 나오는 고통받는 사람의 대명사가 욥입니다. 그를 위로하러 온 세 친구는 허황된 말만을 늘어놓죠. 욥은 오히려 자신의 고통 자체만을 순수하게 드러내고 신앞에 엎드리면서 구원을 받습니다. 이 허황된 위선에 대한 독설이 있는건 아니지만 공감할만한 해석이군요. 그럼 이만 총총




덧글